○ 1999년11월25일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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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아서는 더욱 그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한마디가 그리워지네요
#작사ㆍ작곡 신해철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5]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민물장어의 꿈에 대한 신해철의 공식 해설
여기서는 사실은 두가지의 저에게 모티브를 준 두가지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설에서 모티브를 받는다는 것은 그런 어떤 책이나 메세지를 읽고 나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써먹는 것도 아니고, 가사를 쓸때 이걸 기억해서 쓰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런 이미지가 마음 속에 어딘가에 배어 있다가, 글을 쓸때 다시 변형돼서 나오는 건데, 어느게 먼저인지, 뒤인지는 구분하기 힘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죠?
장정일의 소설에 보면, 대단히 엽기적인 그런게 하나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너무나 사랑한 두 사람이 너무나 사랑하여 서로의 신체를 잘라 먹기 시작하고, 최후의 장면이 되면 마지막까지 잘라 먹어서 없어지는 하여간 그러한 것이 있는데, 그... 몸을 잘라서 먹는...
그 다음에, '바늘 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낙타에게' 라는 시가 소설 가운데 등장하는데.. 어느책에 나왔었냐면 그것도 우리나라 소설이었는데... 뭔진 몰라도 하여튼 우리나라 소설인데... 머 하여간 이런게 있습니다.
그런 쪽의 이미지에서 하여간 제가 강렬하게 갖고 있던 이미지는 자기의 자아가 크게 확대되면서 자기가 더 커지고 싶은 욕망 즉, 내가 확대되면서, 사이즈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세계의 사이즈가 줄어드면서 내가 성장하는, 어떤 진보의 이미지보다는 내 팔과 다리를 점점 잘라가면서 끝까지 버텨서 자기 자신을 잘라가는 그 치열함과 가혹함과 물러설 때 없는 배수의 진의 강렬한 느낌이랄까.
전 그런 쪽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좁고 좁은 저 문으로 가야하긴하는데, 그 문을 넓히고 부수는 방법이 있고, 나를 잘라서 저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만 남겨놓는 방법이 있겠죠. 그럴텐데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을 자르고, 그래서 정말 필요한, 내가 나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겨 놓는다면 굉장히 잔인한 질문이겠죠.
어디하고 어디까지는 버려도 나인채로 유지할 수 있을까.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아닐까.
그 때가 영국으로 처음 공부하러 갔을 때인데요, 한국에서 소위 스타라는 것으로 10년 정도를 살고, 그 이전에 자연인으로 한 20년을 살았죠.
그 상황에서, 내가 스타라는 것을 버리면 신해철이 아닐까?
저는 그것은 상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버린다, 내가 음악하는 애라는 것을 버린다면... 그렇다면 내가 아닐까?
어릴 때는 음악 없이 살 수 없을거라고 생각해왔고, 그 음악 없인 내 인생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거라고 생각했는데... 음악이 없다면 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죠.
내가 가진 것들, 사회적으로 가진 것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 재산 버리기가 쉽지 얼마 안되니까, 이런 것들. 주변 인간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소모해야 되는 막대한 시간, 주위의 평판을 얻기 위해 내가 자제해야 하는 것들.
뭐 이런 것들이 대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그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깡그리 버린다면, 오로지 내 불알 두쪽이랑 내 몸과 내 정신만을 딱 남겨논다고 생각했을 때,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앞으로 나가겠다는 의지, 자존심 밖에 남은게 없더라.
망향에 대한 느낌은, 확실히 이역만리에서 살아본다는건 굉장히 좋은거 같아요. 그리고 그 고독이라는 게 그 전까지는 뭐라고 생각했냐면 군중 속의 고독.. 나를 사랑해주는 팬이 있고, 친구들이 나를 오냐오냐 해주고, 부모 형제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엔 혼자고, 자기 혼자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땐 온전히 한사람의 몫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고독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편안한 고독이냐는 거에요, 내 가정과 내 부모와 내 형제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고독." 이건 좆같은 사치스런 고독이고...
그게 아니라 타국 땅에서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는 놈도 없는데, 혼자 똑 떨어져 있을 때, 실제로 물리적으로 고독하게 된다면, 물론 그거는 저... 무인도에 지 혼자 떨어진 절대적인 거 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겠지만...
그런 사치스런, 이... 왠지 모를 문학소년 필잡으면서 "아... 인간들 사이에서도 결국엔 고독해질 수 밖에 없어"하는 젓까는 고독말고, 진짜배기에 가까운걸 맛보기 시작했을 때, 그 가족들과 일정한 시간이 되면 아침 식사, 저녁 식사, 이 동물인 인간이 어차피 하루 세끼 먹어야 되는 음식을 가족들과 공유한다라는 그 엄청난 가치와 그 강한 힘과 안정감과, 그것 역시 내가 버리고 온 것 중 하나죠.
그런 것들이 마치 그 생선 기름 냄새가 낭자한 그 런던에서. 하얀 쌀밥이 주는 밥의 냄새. 어떤 산해진미의 냄새가 아니라 모락모락한 김과 같이 저를 나약하게 만들더라. 그런 얘기입니다.
근데 이게 운명의 소리인지 신의 소리인지 뭐의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이유없이 왠지 내가 그래야할거 같지만, 그 느낌은 대단히 강렬해서 왠지 그래야 할거 같다는 느낌은 이유를 대기 힘들다는 것 뿐이고. 혹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이유보다 더 중요한게 있는거 같다라는 느낌이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솔로로 앨범내고 잘 팔리고 잘 나가고 있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건 밴드이고, 정말 밴드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안돌아가면 솔로로 실패할 것이냐, 뭐 아니면 지금 밴드로 못가면 영원히 못 가느냐는 것은... 지금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정적인 느낌에 어울리지 않는 민물장어, 요 민물장어가, 사실 이 민물장어가 모든 느낌을 다 담고 있는 것인데요.
민물에서 사는 물고기들, 담수어들은 바다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 염분이 들어있는 바닷물에 나가면 죽게 되겠죠. 아마... 물론 바다와 강을 오가는 몇종류의 물고기가 있지만, 그런데 이 민물장어가 먹이를 구하고 뛰어놀고 모든 것이 만족되었다고 살 수도 있습니다. 폐수에 오염되어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뛰쳐가는게 아니거든요.
그러나 이 민물장어의 골때림은, 이 먹이와 친구와 모든 환경을 모두 만족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가지, 만족할 수 없는 "이 민물과는 다른 더 넓은 바다라는 곳이 있다는데, 그곳은 여기와는 다른 세계라는데, 그곳에는 물이 한방향으로 흐르지를 않는다는데, 물의 표면에 파도가 친다는데, 나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거죠. 그곳에 친구가 있든 없든, 먹이가 있든 없든, 거기서 살아남든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강물을 따라 따라 흘러내려가서, 결국에 바다에 도달해야될 것 같다. 그냥 난 가보고 싶다. 남들이 뭐라던 나는 나의 존재의 의미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바다로 흘러가야할 나의 운명을."이라고 얘기하는 이 괴짜 민물장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노래는 어차피 그 민물장어라는 어떤 캐릭터 안에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얘기죠. 쉽죠?
모든 직업과 모든 분야가 끝까지 가면은 모두가 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야쿠자들조차도 맨 극한의 마지막에 있는 도라고 해서 극도라고 부르는데..
어떤 학문이건, 어떤 일을 하고 살건, 어떤 입장이건 자기가 진심으로 진검승부로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를 파고 든다면 요리사는 요리를 통해서,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서, 뭐 정치가는 정치를 통해서... 아 근데 정치는 왜 그게 안되는지 모르겠네?.. 뭐... 장사하는 사람은 돈벌이를 통해서 도에 이르고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라는 신념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를 하는 편인데...
그래서 내가 음악을 한다, 무엇을 한다 라는 것은 결국은 내가 인간이고자 하는, 그리고 도달하고자 하는, 그 무엇에 도달하기 위험이니까. 10대나 20대 초반때 눈 뻘걸때처럼 '음악이 없으면 난 죽는다'하고 생각하진 않죠. 물론 음악이 없으면 실제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음악과, 그게 아니라 이건 내가 살아가는 것을 그냥 그대로 표현한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해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고, 억지로 짜내려는 것 보다는, 내 모습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나올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되는거 거든요.
사실은 바다에 도착했을 때, 어차피 이 아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가야할 지역이, 내 목숨이,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 지역이라면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아 따가 아 따가"하며 죽어가는 단말마의 고통과, 그 짧게 거기에 도달했지만, 결국에는 거기서 생명이 유지되지 않는 현상도 받아들이겠다."라고 이 장어는 얘기합니다. 어... 그러니까, "죽든 말든 뒈지든 말든 씨바 난 거길 가고 말아야겠다."하는 이야기죠.
어... 그걸 이제, 강물이라는 작은 물의 표현과, 바다라는 더 큰 대상이 되어있기 때문에, 제가 이제 국내 가요계에서 활동을 하다 영국에 갔던 시점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 진출에 대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분이 있는데, 글쎄? ㅎㅎ 그것은 꼭 그렇게 해석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애요.
그거는 이제 강물에 있으면서 강물에 있는 민물장어가, 그 강물의 사이즈가 맘에 안 들어서, 혹은 이 강물은 너무 작아서... 그렇게 생각한건 아니거든요? 항상 내가 있는 곳은, 멈춰있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더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그 다음에 이제 바닷물에 도착해 민물장어가 정착해서 잘 살고 바닷물에서 이제 시민권도 따고, 영주권도 따고 그랬다면, 그 다음엔 얜 하늘을 날기를 꿈꾸겠죠.
어쨌든 다음 장소로, 다음 장소로 가고자 하는 것은 이... 뭔가를 창조하기 위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어... 속성이면서 동시의 의무이니까... 하여간 그런 해석입니다.
다시 한번 들어보세요, 민물장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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