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영화 음악

나 가거든

2영하 2023. 3. 2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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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나 가거든
조관우/나 가거든

나 가거든/드라마 명성황후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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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미/나 가거든

조수미/나 가거든


■ 조관우/나 가거든

조관우/나 가거든

조관우 노래모음


■ 가사

#작사 강은경
#작곡 이경섭

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 쉬듯 물어볼까요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율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흩어진 노을처럼
내 아픈 기억도 바래지면
그땐 웃어질까요 이 마음
그리운 옛일로
저기 홀로선 별 하나
나의 외로움을 아는건지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 못해
밤새 그 자리에만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내 슬픔까지도 사랑하길 우

부디 먼 훗날
나 가고 슬퍼하는 이
나 슬픔속에도 행복했다 믿게



■ 명성황후 시해사건

명성황후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강인한 모습과 일본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비극적인 왕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명성황후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때 왜 하필이면 황후였을까요?
당시 조선은 유교 사상 아래 남녀차별이 심했고, 특히 여성에게는 정치 참여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종황제는 당시 청나라와의 전쟁 후 힘이 약해진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강대국인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민씨 가문 중 한 명이었던 명성황후를 선택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어떻게 명성황후를 죽였나요?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쯤 경복궁 안 건청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한 자객들에게 살해당하였습니다. 사건 직후 현장조사를 실시했지만 범인들을 찾지 못하였고, 결국 1896년 2월 11일 미우라 고로 공사 등 48명의 일본인들이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2005년 '민비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을미사변 당일 작전명이 '여우사냥'이었다는 점과 시신 옆에 있던 칼자국이 조선인 육군 중위였던 이두황의 칼자국임이 밝혀지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살해범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미우라 고로의 아들이자 명성황후 암살작전 지휘자인 우치다 사다쓰치(內田定槌)는 1903년 히로시마현 구레시에 신사를 건립했는데, 이곳엔 ‘한국 정벌의 영웅’이라 적혀있습니다. 또한 현재까지도 매년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12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 민사합의 40부는 “1909년 한일합병조약 체결 공로자”라며 이토 히로부미 유족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식장 앞에서 사죄 퍼포먼스를 하는 등 반성없는 행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역사 속 비운의 주인공이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고있는 명성황후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하루빨리 역사왜곡 문제가 해결되어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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